Wizardry 7 (위저드리 7)
Wizardry 7, Crusaders of the Dark Savant

스크린샷: http://www.mobygames.com (골드 버전 스크린샷)
장르: 롤플레잉
사양: PC / 286AT 이상, VGA, Pentium 이하
만듬: Sir-tech Software, Inc.
펴냄: Sir-tech Software, Inc. 1992
2001. 6. 27. saysix
고전이란 단순히 오래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가치를 인정받으며 많은 이들이 기억해 주고 사랑을 받는 작품이야말로 진정 ‘고전’이란 명예를 부여받을 수 있다. 출시된지 거의 10년이 지났는데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위저드리 7′은 그래서 참된 의미에서의 고전 게임이 아닌가 싶다.
‘프루빙 그라운즈 오브 더 매드 오버로드(Proving Grounds of the Mad Overlord)’라는 제목으로 1984년 첫 작품이 나온 이래, 위저드리 시리즈는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 울티마 시리즈와 더불어 CRPG의 모범적인 전형을 만들어 왔다. 원래 롤플레잉 게임은 실제 사람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로 대화를 통해 역할 수행을 하며 즐기는 게임이었다. 위저드리는 이를 컴퓨터를 이용해 혼자 즐기는 게임으로 새롭게 완성해 냈다. 이후 만들어진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들은 많든 적든 모두 위저드리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크루세이더 오브 더 다크 사반트(Crusaders of the Dark Savant)’는 위저드리 시리즈의 7번째 작품으로 더욱 복잡해진 스토리와 방대한 맵, 정교해진 전투 시스템을 갖고 있다.
■ 강력한 힘의 근원, 아스트랄 도미네
지난 6편에서 어둠의 군주를 물리치고 마침내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마법의 펜, 코즈믹 포지를 찾아낸 주인공 일행은 마지막 순간, 수수께끼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 인물의 정체는 7편 오프닝에서 비로소 밝혀진다. 우주를 관장하는 신적 존재인 코즈믹 써클이 보낸 사자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코즈믹 포지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이탈되어 있던 그동안 우주의 균형이 깨지면서 치명적인 재난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바로 아스트랄 도미네가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아스트랄 도미네는, 그 위험성 때문에 코즈믹 써클의 일원들이 코즈믹 포지의 힘을 빌어 아무도 볼 수 없고 가 닿을 수 없도록 숨겨 놓았던 존재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에 드러나 버렸고, 그 힘을 차지하여 코즈믹 써클을 누르고 우주를 제패하려는 다크 사반트가 그곳으로 향했으며, 다른 외계 종족들도 아스트랄 도미네를 탐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주인공 일행은 이 세상을 자신의 발 밑에 지배하고자 하는 다크 사반트의 어두운 음모를 막기 위하여 코즈믹 써클의 사자가 준비해 둔 우주선을 타고 가디아 행성으로 향한다. 바로 아스트랄 도미네가 있는 곳이다. 주인공 일행은 여지껏 겪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될 것이다. 가디아 행성은 지금까지 주인공 일행들이 살았던 검과 마법의 세계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한 기계 문명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 전통이 갖는 미덕
위저드리 시리즈는 1편이 발표된 이후 7편에 이르기까지 줄곧 1인칭 던전형 턴제 롤플레잉이라는 시스템을 고수해 왔다. 애플에서 IBM으로 넘어오는 6편에서 상당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기본적인 컨셉은 이전 시리즈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울티마 시리즈가 시리즈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모습과 시도로 변화를 추구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위저드리의 이런 경향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이점을 갖는다. 물론 각각 장단점이 있는 것이겠지만.
먼저, 기존 팬들에게는 익숙한 환경을 제공하며 기대감을 져버리지 않는 신뢰를 준다는 점, 그리고 한 우물을 파기 때문에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축적되는 노하우로 충실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보여준다는 점이 그것이다.
처음 위저드리 7을 실행하고 화면을 보면 그다지 뛰어날 것 없는 그래픽에 뚝뚝 끊어지는 투박한 애니메이션, 초보자에게는 불친절하기 이를데 없는 인터페이스를 만나게 된다. 이런 게임이 어째서 명작인가? 하지만 게임을 진행해 나가다보면 곧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상당히 자세한 부분까지 게이머에게 컨트롤을 맡기면서도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지 않는 조화로운 모습이 만만치 않은 전통의 힘을 느끼게 해 준다.
먼저 전투 시스템을 보면, 매턴마다 전사의 경우 각각 무기를 휘두를 것인가 찌를 것인가 등을 정해 줄 수 있고, 마법을 시전할 때는 마나 소비량을 조절하여 어느 정도의 강도로 쓸 것인가를 정해 줄 수 있는 등, 상당히 자세한 설정으로 다양한 전술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기술치 개념이 있어, 레벨과는 또다른 면에서 인물들을 성장시킬 수 있다. 똑같은 상대를 만나더라도 어떤 전술을 쓰느냐에 따라 전투를 쉽게 이끌 수도 있고, 힘을 낭비하여 금방 지치게 되기도 한다. 무조건 강한 기술, 강한 마법만 써서는 힘의 낭비 때문에 게임을 원활히 진행해 나가기 어렵게 된다. 휴식을 취한다 해도 체력이나 마나가 회복되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므로 전투 상황 자체에서 잘 조절해야 한다.
장기적인 전략으로는 전직 시스템의 활용도 빼 놓을 수 없다. 전투를 할 때 팀 구성원의 직업이 무엇인가에 따라 전술은 확연이 달라진다. 쓸 수 있는 기술과 무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레벨의 몬스터라 하더라도 특성과 저항치에 따라 전투의 난이도가 달라질 수 있다. 직업에 따른 팀의 성격에 맞는 몬스터는 쉽게 이길 수 있지만, 상극인 몬스터에게는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이런 면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전직을 활용하면,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전술 구현이 가능하게 되어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지하 무덤의 몬스터들은 이러한 전술적 고려가 부족할 경우, 이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이전 시리즈에 있었던 레벨 노가다도 이제는 할 필요가 없다. 해야 할 일들을 찾아 임무를 수행해 나가다 보면 신기하게도 각각 상황과 수준에 적합할 만큼 능력이 성장되어 있어 스토리 진행에만 몰입할 수 있다. 이만한 자유도를 가진 게임에서 이만큼 균형을 이루도록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축적된 노하우를 가진 제작진의 배려를 또 한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 도전과 모험이 주는 매력
위저드리 7은 다른 롤플레잉 게임이 대개 그러하듯이 모험으로 가득한 세계이다. 풀어야 할 수수께끼와 임무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지도를 활용한 퍼즐 시스템은 상당히 독특하다.
게임의 배경인 가디아 행성을 탐험하다 보면 사건 진행에 따라 지도를 모을 수 있다. 때로는 게임 내 다른 인물인 NPC를 통하여, 때로는 보물 상자를 열어 갖게 되는 이 지도는 사실 지도라기보다는 텍스트로 된 문서이다. 텍스트 자체는 그냥 평이한 문장들에 불과하지만, 그 행간에 담긴 비밀을 풀면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게 된다. 각각의 지도는 숨겨진 장소, 또는 그곳을 열 수 있는 방법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진짜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상당히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꽤나 어려운 편이지만 이런저런 궁리와 노력 끝에 이면의 의미를 알아낸 뒤 느끼는 희열은 이루 말하기 힘들다. 스토리를 진행하다가 더 이상 진전이 없을 때 갖고 있던 지도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의외의 길이 열리는 경우도 많다. 다크 사반트의 음모를 막기 위한 퀘스트를 진행하려면 지도 관련 퍼즐을 대부분 풀어야 한다.
다양한 NPC와의 상호 작용도 이전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모습이다. 심지어 NPC들끼리 서로 상대를 암살해 달라는 의뢰를 하기도 해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편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서 친밀도가 달라져 그 종족 전체와 적이 되거나 아군이 되기도 한다. 어떤 종족이 적이 되어 버리면 그 일원과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대화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는 만나자마자 싸움부터 걸어오므로 적절한 처세술(?)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어제까지도 곧잘 무기 거래를 하던 무기 상인이 상점에 들어선 주인공 일행에게 장사할 생각은 않고 대꾸도 않는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물론 나중에 다시 잘 구슬리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전체적으로 스토리 진행은 상당히 자유로운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도전적인 퍼즐들이 게임 진행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 글을 마치며…
위저드리 7은 전통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수작이었다. 전투와 퍼즐, 스토리 진행, 어느 면에서도 만만치 않아 쉽지 않은 게임이었지만, 적절한 균형과 조화로 전체를 아우른 솜씨가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