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ol of Radiance (풀 오브 레이디언스)
Pool of Radiance
장르: 롤플레잉
사양: PC / DOS, XT
만듬: Strategic Simulations, Inc.
펴냄: Strategic Simulations, Inc., 1988
2004. 9. 16. saysix
게임의 배경이 되는 페이룬(Faerun)은 롤플레잉 게임(RPG, Role-Playing Game)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지명이다. 중세 유럽과 비슷한 분위기와 문화를 가진 땅. 하늘에서는 이따금 드래곤의 커다란 날개가 햇빛을 가리는가 하면, 엘프와 드워프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신화와 전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온갖 진기한 이야기들이 바로 눈앞에 끝없이 펼쳐지는 대륙.
페이룬을 품고 있는 포가튼 렐름(Forgotten Realms)은 미국의 TSR사에서 롤플레잉 게임을 위해 내놓은 캠페인 세팅(campaign setting) 중 하나다. 캠페인 세팅이란 게임의 무대가 되는 배경, 세계관과 역사 등을 정리해 놓은 일종의 설정 자료집이다.
원래 롤플레잉 게임은 컴퓨터 게임을 이르는 말이 아니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아 각자 이야기 속의 인물을 나눠 맡은 뒤 대화를 통해 역할 연기(롤플레잉)를 하며 즐기는 형태였다. 꽤 오랜 역사를 가진 보드 게임의 전통에 ‘반지의 제왕’ 이후 부쩍 늘어난 판타지에 대한 관심이 어울려 롤플레잉이라는 게임 장르가 새로 빚어진 것이다. 롤플레잉 게임이 현재의 틀을 갖추게 된 것은 74년 TSR이 체계적으로 규칙을 정리해 D&D(던전 앤 드래곤, Dungeon and Dragon)를 출판하면서부터다. 이후 수정 보완판인 AD&D(어드밴스트 던전 앤 드래곤, Advanced Dungeon and Dragon)를 내면서 여러 캠페인 세팅을 추가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포가튼 렐름이다. (AD&D와 D&D를 포괄적으로 묶어 D&D라 부르기도 한다)
롤플레잉 게임의 재미는 현실과 다른 세계 속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 살아보는 것에 있을 것이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세계는 대체로 온갖 모험으로 가득찬 역동적인 모습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재미있을 테니까. 신화와 전설, 역사, 혹은 과학 소설 등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고난 극복과 모험의 드라마에 빠져 들었던 독자라면 이번에는 롤플레잉 게임을 통해 직접 주인공이 되어 그 세계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게임 규칙을 크게 거스르지만 않는다면 거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순전히 자기 마음에 달린 일이다.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가. (아니라고? 음… 그대와 나는 취향이 다른 모양이다.)
전자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재미있는 롤플레잉 게임을 컴퓨터 게임으로도 만들어 즐길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온 초창기 결과물 중 유명한 작품이 울티마(Ultima)와 위저드리(Wizardry)다.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Computer Role-Playing Game, CRPG)’이 나오자 사람들은 시간 약속을 잡고 한 자리에 모일 필요가 없어졌다. 혼자서도 마음 내키면 언제든지 롤플레잉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편리해진 만큼 댓가도 따랐다. 컴퓨터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실제 사람들끼리 만나서야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의 풍부함, 상상력의 깊이, 상황의 자율성 등을 많은 부분 포기해야만 했고, 게임 규칙도 큰 폭으로 간략화하고 수정해야 했다.
어찌 보면 다운 그레이드였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렇게 변형된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은 곧 원래의 롤플레잉 게임(CRPG와 구별하여 TRPG라 부르기도 한다 Table Role-Playing Game, Table-talk Role Playing Game)과는 다른 내적 논리와 구조를 갖추면서 독자적인 장르로 성장하게 된다. 88년에 나온 풀 오브 레이디언스는 그 과정에서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 쪽에 축복처럼 출현한 수작이다.
■ 본격 AD&D CRPG
초창기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 치고 D&D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은 드물다. 테이블 롤플레잉 게임이 모태가 된 까닭이다. 하지만 태생적 한계를 어떤 식으로 보충해 갔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풀 오브 레이디언스는 AD&D 규칙을 고집스럽고도 충실하게 재현해내는 쪽을 선택했다 . 울티마 등의 작품들이 기존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새로 열어 가려 했던 것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세심하게 배려된 각종 수치와 목록들, 그리고 그들간의 균형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에 찬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전투가 벌어졌을 때 새로 열리는 화면도 단순해 보이지만 기능적이다. 캐릭터의 이동력과 바라보고 있는 방향, 무기의 유효 사거리, 각종 효과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등이 전략적 요소로 살아날 수 있도록 주의깊게 구성되어 있다.
테이블 롤플레잉 게임의 정교한 규칙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즐거움을, 비록 혼자 노는 게임이긴 하지만 충분히 맛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풀 오브 레이디언스의 이런 매력은 경우에 따라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AD&D 규칙에 익숙치 않은 이에게는 게임 시작하기도 전에 공부만 하다가 날이 샐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테이블 롤플레잉 게임 유저층과 컴퓨터 게임 유저층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롤플레잉 게임을 컴퓨터로 처음 접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은 보는 시각과 원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북구 신화와 테이블 롤플레잉 게임이 대중화되어 있는 서양과 달리, 문화적 배경이 다른 우리로서는 이런 게임이 생뚱맞은 마니아 장르로 여겨질 가능성이 더 높다. 쉽게 말해서 때리면 맞으면서 억!하고 쓰러지면 되는 건데, 거기에 다면체 주사위, 턴과 라운드, THAC0와 AC 등의 생소한 개념들이 섞여들어가니 부담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놀이가 벌어지는 마당(Field, 필드, 장)이 달라진데서 오는 근본적인 불일치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서 마당이 달라졌다는 건 놀이가 벌어지는 장소가 테이블에서 컴퓨터로 이동된 것을 말한다. 테이블에는 테이블의 논리가, 컴퓨터에는 컴퓨터의 논리가 따로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주사위를 던져야 하지만, 다른쪽에서는 무작위로 숫자를 생성해 준다. 한쪽에서는 안 되면 말빨로라도 비벼볼 수가 있지만, 다른쪽에서는 그런 거 국물도 없다. 한쪽에서는 상대가 인간인지라 말도 못할 변덕과 황당한 변수들이 즐비하지만, 다른쪽에서는 아무리 규칙을 복잡하게 꼬아놓는다 해도 일단 패턴을 파악하기만 하면 이후가 단순해져 버린다. 중역판 책을 읽는 느낌이랄까, 애초에 유연하게 즐기는 다인용 테이블 게임에 쓰려고 만든 규칙들이기에, 이를 다시 기계적이고 자동화된 일인용 컴퓨터 게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어색해지거나 거추장스럽게 돌출되어 버리는 부분이 남는 것이다. 상징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무기의 데미지(Damage) 수치를 ’2D4′ 등으로 표기하는 것이 그렇다. 4면체 주사위를 2번 던져서 나온 값을 뜻하는데, 컴퓨터라면 주사위가 4면체냐 6면체냐를 따질 것 없이 바로 숫자를 무작위로 생성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7면체나 453면체 등 정다각형으로는 만들 수 없거나 면 수가 대단히 많은 주사위도 구현할 수 있다. 더 넓은 범위의 숫자를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D&D 게임이라면 컴퓨터용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테이블용의 규칙을 따르며 그 제약도 감수한다.
그래서 많은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이 테이블 롤플레잉 게임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길을 걸었다. 테이블 롤플레잉 게임만 아는 이가 있어 처음으로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를 접한다면 아마 그 황당함에 뒤로 자빠질지도 모른다. 게임을 풍부하게 해 주던 미묘한 규칙들은 대부분 삭제되어 버린데다 ‘+2′만 붙어도 감지덕지할 보너스 수치들이 ‘+10′ 넘기는 일이 다반사인 단순무식 먼치킨(상식밖의 플레이어) 게임으로 보일 테니 말이다. 울티마는 더 심하다. 아예 규칙 무시, 전통 무시의 스토리 중심 어드벤처 게임이다. 그리하여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혹시 지금도 잘 나간다는 디아블로 시리즈는 다를까 싶어 그쪽으로 눈을 돌린다면? …아예 말을 말자.(…)
물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편향된 시각일 것이다.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은 테이블 롤플레잉 게임이 아니다. 이미 마당이 달라진만큼 스스로의 길을 새로 개척해 가야 하는 입장이다. 마이트 앤 매직은 플레이어 사이의 풍요로운 상호작용을 구현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기술적인 면에서 숫자의 제약을 풀어 버렸다. 울티마는 플레이어 마음대로 이야기 전개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든 것을 역이용했다. 상대적으로 주도권을 확보한 제작자가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구성해 스스로의 철학을 녹여넣는데 성공한 것이다. 디아블로는 더욱 극적이다. 실시간 액션이 가능한 컴퓨터 환경을 이용해 장르의 경계선을 훨훨 넘어 롤플레잉의 씨앗을 액션 장르의 밭에 가져다 뿌려 수확을 거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라면 과거라 할 수 있는 D&D 규칙에 그토록 연연하는 풀 오브 레이디언스는 시대에 뒤떨어진 그들만의 게임인 것일까? 물론 아니다.
■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는 얼마전부터 발더스 게이트, 아이스윈드 데일 등을 시작으로 D&D 게임들이 시장에서 다시 화려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바람은 복고 취향의 한때 유행으로만 넘겨 버리기에는 존재감이 만만치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즐길 가치가 있고 그만큼 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한때 고전적 형태의 롤플레잉 게임은 사멸해 가는 장르라 여겨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시장이 증명해 주었다. 롤플레잉 쪽에서도 복잡하지 않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임, 액션이 가미되고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는 게임이 훨신 더 선호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그 방향으로 통일되기를 원했던 건 아니라는 뜻이다.
액션형이 되었든, 고전적인 형태가 되었던, 게임기와 일본 정서를 통과하면서 만들어진 아니메형이 되었든, 복잡하든 간단하든 각자는 다른쪽이 갖지 못한 고유한 매력을 갖고 있다. 어느 하나를 두고 뒤떨어졌다거나 반대로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편견이며 다른 취향을 가진 이를 무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다양성 아래 얽혀들어갈 수 있어야 건강한 포용성을 지닌 무엇인가가 될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덩치를 불릴수록 힘이 커지는 자본의 논리는 유행의 힘을 이용해 사람들의 취향을 집중 고정시키고 싶어 한다. 타겟이 흩어져 있을수록 한번에 명중시킬 수 있는 양이 줄어든다. 그래서 ‘서로 다름’의 차원에 있던 것들이 더 발전된 것과 뒤떨어진 것, 즉 우열의 차원으로 옮겨진다. 착시 현상을 조장하는 것이다. 물론 더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쪽이 사람들이 몰려가야 할 곳이다. 이는 다시 게이머들 사이의 분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심심하면 한번씩 벌어지는 PC와 게임기의 해묵은 논쟁, 블리저드 팬과 안티 팬들 사이의 격론 등은 사실 자신의 취향으로 세상이 재편되기를 원하는 이들 사이의 한 판 힘겨루기일 뿐이다. 우리는 소비자가 시장에서 힘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은 바로 머릿수, 그리하여 자기 편의 덩치를 불려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디 게임 등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전자 게임은 대부분의 엔터테이먼트 산업이 그렇듯 개발과 유통에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딜레마다.
여하튼 풀 오브 레이디언스는 롤플레잉 게임의 다양한 가능성 중 하나, 고전적인 형태를 선도했던 초창기 작품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특히 D&D 규칙을 충실히 재현했다는 점이 다른 게임들과 구별되는 미덕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D&D 규칙을 PC 게임에 성공적으로 이식하는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풀 오브 레이디언스가 D&D로부터 빚진 것은 아름다움마저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게 구축된 균형잡힌 시스템의 힘만이 아니었다.
■ 모험의 시작
페이룬 대륙의 북쪽 변두리, 문 시(Moon Sea, 달의 바다)와 맞닿아 있는 도시 플란(Phlan)은 한때 영화를 누렸던 고대 상업 도시다. 세월의 흐름 속에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영향력을 잃긴 했지만, 교통의 요충지로서 플란이 갖고 있는 가치는 지금도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수 세기에 걸쳐 지배층의 독선, 북쪽에서 밀려들어온 몬스터들의 대규모 침략 등 불행한 사건들이 겹치면서 폐허가 되어 버린 곳이지만 사람들이 재건을 위해 다시 모여들어 위원회를 세운 것은 그 지정학적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위원회의 주축을 이룬 것은 상인들이었으며, 종교적 신념으로 새 영토를 개척하고 싶어하는 사제들도 나름대로 권력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높은 보상과 관대한 정책으로 외지인들을 끌어모았다. 도시 재건에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소문을 들은 각지의 모험가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플란으로 향했다. 위원회는 재건에 앞서 아직도 도시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몬스터들부터 몰아내기를 원했다. 모험가들이 맡아주어야 할 몫이었다. 위험이 큰 만큼 보상도 크다. 이 게임의 주인공들 역시 소문 듣고 찾아온 모험가들로, 사건을 겪어 나가면서 플란의 불행이 아직도 진행중인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차츰 음모의 한가운데로 빠져들게 된다.
특이할 것도 독창적일 것도 없는 전형적 영웅담이지만 스토리를 끌어가는 힘이 살아 있다. 몇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스케일과 지금 살아 있는 이들이 그 속에서 길어내는 다양한 욕망의 모습이 그럴듯하게 어우러진다. 방대하면서도 꼼꼼하게 구축되어 있는 AD&D 포가튼 렐름의 세계 설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게임 진행 중 알게 되는 단편적 사실들을 퍼즐 조각 삼아 사건의 진실을 구성해 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풀 오브 레이디언스에서는 보상만을 바라보고 단순 배달직 혹은 청부업자 역할을 반복하는 단조로운 퀘스트는 찾아보기 힘들다. 외형적으로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대개의 사건들은 알고 보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커다란 이야기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 매력적인 부분이다. 어차피 장르물의 스토리란 게 떼어놓고 보면 별 거 없다. 그걸 어떤 식으로 보여주느냐가 중요한데, 이 게임은 유기적인 구성력으로 지루함을 느낄 틈 없이 지속적으로 게이머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한다.
게임 속의 내용은 허구다. 허구라는 건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 하더라도 상상 속에서는 살아 있는 이미지와 물성을 얻을 수 있다. 상상의 공간에서는 무엇이든 제약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다고 재료가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다. 현실 공간에서 집을 지을 때 건축 자재가 있어야 하듯이 상상의 공간도 그렇다. 뭔가 대단한 게 요구되는 건 아니다. 대상에 대한 정보가 상상의 공간 속에서 쓰이는 건축 자재다. 그것은 스스로 지어낸 것일 수도 있고 남에게 들은 것일 수도 있다.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미지일 수도 있다. 포가튼 렐름 캠페인 세팅은 값비싼 자재들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쌓여있는 야외 창고와도 같다. 더 대단한 것은 지금도 새로운 자재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계속 쓰여지고 있고 새로운 게임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깊어지고 넓어지는 페이룬 대륙은 다시 새롭게 쓰여지는 이야기의 든든한 배경이 된다. 게임 하나하나가 완결된 스토리를 가지면서 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거대한 전체를 이루는 구조,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지원하면서 다같이 풍요로워지는 구조, 풀 오브 레이디언스 역시 그물망의 일원이다. 그것도 흥행과 완성도 면에서 모두 성공한 행복한 경우로 남아 있는.
게임 안에 주어진 상황과 자료, 규칙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익혀 사건과 스토리를 구성하고 재미를 찾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플레이어의 몫이다. 어떤 게임은 익숙해지는데 필요한 시간이 짧지만 어떤 게임은 그렇지 못하다. 불행히도 이 게임은 후자에 가깝다. 하지만 나중에 주어질 보상에 비한다면 처음의 어려움은 별 거 아닐 수 있다. 게다가 AD&D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라면 초기 장벽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적어도 나는 풀 오브 레이디언스의 세계가 품고 있는 다양한 장면들을 여행하면서 글자 그대로 ‘모험하는 재미’의 원초적인 맛을 흠뻑 느껴볼 수 있었다. 오래된 그래픽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즐겨보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 글을 마치며…
정교하고 세밀하게 구축된 규칙의 그물망을 타고 마치 능숙한 거미처럼 효율적인 동작으로 목표를 잡아채는 쾌감, 거기에 규칙을 준수하는 게임의 재미가 있다. 반대로 역동적인 파괴와 액션으로 선을 넘어 일탈하는 데서 얻는 쾌감, 규칙을 어기는 데서 오는 게임의 재미도 있다. 어느쪽이 되었든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고픈 욕망의 또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게임의 주요 성분으로 우리는 상호 작용(interaction)을 들곤 한다. 이것은 내가 대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하기에 상호 작용이 중요해진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을 원하는가. 스스로를 확인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파악한다. 세상과 내가 얼마나 튼튼하게 이어져 있는지는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로 확인된다.
비록 가상일지언정 게임 속 세상에서 주인공 혹은 ‘나’는 확실한 권력을 갖고 있다. 내가 없으면 게임이 돌아가지 않는다. 규칙을 손아귀에 넣고 아우를 수 있는 지배자, 혹은 그 규칙을 깨 버릴 수 있는 지배자로서 ‘나’는 게임 속에 강림한다.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되 ‘중요 인물’로서 체험한다. 주인공이 없는 테트리스 같은 게임에서조차 플레이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사회성이 강조되는 온라인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게임은 스스로의 욕망을 달래는 가짜 위안, 그리하여 현실 속의 삶을 나약하게 만드는 해로운 매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맞다.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게임이 그렇게 전락했다면 플레이어 스스로의 책임 역시 적지 않다.
우리는 밤에 잠을 자면서 꿈을 꾼다. 꿈을 꾸는 이유 중 하나로 학자들은 ‘소망 충족의 원리’를 들기도 한다. 깨어 있는 동안 품게된 충동이나 욕망을 꿈 속의 장면을 통해 대리 만족하면서 정신적 긴장을 푼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람이란 쌓인게 있으면 풀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 그리 하지 못하면 건강에 좋지 않으리라는 것. 게임도 꿈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게임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놀이’가 그런 식이다.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는 우리는 고난을 극복하게 될 것을 알고 있다. 스토리가 그렇게 짜여져 있을 테니까. 그 안에서 폼도 잡아보고 영웅 행세도 해 본다. 역사의 큰 물줄기가 주인공에 의해 바뀌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게임에는 엔딩 말고도 종료 라는 출구가 있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언제든 그곳에서 나올 수 있다. 게임의 세계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가상 공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정한 규칙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그곳 세계는 이해 가능하다. 안다는 것은 권력이다. 알아야 마음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이해의 범위를 초과한다. 가상 공간은 그리하여 쌓이는 온갖 불안과 억눌린 욕망들을 부려놓고 나오는 곳이다. 그곳이 가짜라는 것을 안다. 이제 가뿐해진 마음으로 현실을 플레이한다. 그게 전자 게임과 같은 문화 상품을 소비하는 방식일 터이다.

몇번을 읽어보아도 멋진 Pool of Radiance 리뷰입니다. Death Knight of Krynn에서 적의 대규모 공세에 시달렸던 적은 있었지만 정작 Pool of Radiance는 접해본 적이 없는데, 이참에 한번 해봐야 겠네요 ^^;;
오래 전에 해봤던 Dragon of Flame도 생각납니다. Dragon Lance 시리즈의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액션게임을 방불케 하는 횡스크롤 전투화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참 뒤에 ‘성채의 적룡’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원작을 보니 게임 내용과 정말 비슷하더군요.
iris2000 / 엄청난 마니아 집단 SSI의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구석구석 도무지 허술하게 넘어간 부분이 없더군요. 이렇게 팽팽한 완성도를 이룬 작품도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으셨다니 깜짝! 게다가 여러 번 읽으셨다니 더 깜짝!
그리고 나중에 나온 리메이크 버전은 원작의 명성에 똥칠을 했다고 하더군요.
유명한 게임의 리메이크라길래 데모를 다운받아봤다가 5분정도 플레이하고 지웠드랬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뭘 어떻게 하는 거였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각종 리뷰에선 획기적인 시스템이라고 했었는데…..
별쥐 / 리메이크라기보다는 후속작일 겁니다. 그런데 남들이 아무리 욕을 해도 저는 뒷이야기가 궁금하니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코를 꿰었다고 합니다. 저같은 게이머가 있으니 오늘도 인기작 우려먹기 시리즈의 신화는 계속 되는 거겠죠.